TED 감상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수학의 정의는 첫째, 패턴을 찾는 것입니다. 둘째, 이 패턴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셋째, 수학은 멋진 일을 하는 것입니다이 강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다. 수학을 패턴이라 정의 내리다니...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처음에는 이 패턴이 피보나치 수열, 황금비 같은 것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강의를 다 듣고 나서 내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로저가 말한 패턴은 수학의 어려운 규칙, 패턴이 아니라 넥타이, 신발끈을 묶는 다양한 매듭과 같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 또한 사람들이 다양한 매듭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패턴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R'을 보여주면 왜 사람들은 R이라고 생각할까? 그 이유는 다양한 형태의 R들을 보고 우리가 이것을 R이라고 일반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를 관점을 가진다면 단순한 알파벳 R이 아니라 저항의 뜻을 가지고 있을수도 있다. 이 강연에서 로저가 주장하는 것이 관점을 바꿔라였다.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고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4/3을보면 분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주기에 4바퀴 도는 시계와 3바퀴 도는 시계의 침을 실로 연결하면 형태가 나오는 것처럼. 무엇이든 한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관점을 바꿔라를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공감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완벽하게 이해했을 때 우리는 공감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로저는 왜 궂이 수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비밀이라고 했을까? 다른 학문은? 나는 그 답을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았다. 박자, 음표, 점자기호등 모든 것들을 숫자로 표현할 수 있고 수학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들이 패턴을 가지고 있고, 로저는 수학을 패턴이라 정의내렸으니..

 

 

 

수학의 역사[History of mathematics, 수학사]

 

수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만큼 오래 되었다. 수학사(數學史)로 알려진 학문 분야는 본래 수학의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원을 탐구하는 것이며, 더 작게는, 과거의 표준적인 수학 방법과 용어에 대한 탐구다.

교역 ·분배 ·과세 등 인류의 사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계산을 수학이 담당해 왔고, 농경생활에 필수적인 천문 관측과 달력의 제정, 토지의 측량 또한 수학이 직접적으로 관여한 분야다. 고대 수학을 크게 발전시킨 나라로는 이집트, 인도, 그리스, 중국 등이 있다.

근대 시대와 지식의 전 세계적인 확산 이전에, 새로운 수학적 발전의 문자로 된 예들은 단지 일부 지역에서만 나타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수학적 텍스트들은 플림톤 322(바빌로니아 수학, 기원전 1900년 경), 모스크바 수학 파피루스(이집트의 수학, 기원전 1850년 경), 린드 수학 파피루스(이집트의 수학, 기원전 1650년 경), 술바 수트라스(인도의 수학, 기원전 800년 경). 이들 텍스트들 모두는, 아주 고대부터 그리고 기초적인 산수와 기하학 이후에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이는 피타고라스의 정리라 불리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수학은 수학에서의 방법과 다루는 주제를 크게 확장해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로 일반적으로 간주되는 그리스와 헬레네 수학에서 보다 더 발전했다. 이들 고대 문명에서 발전한 수학은 이슬람 수학에서 더 발전하고, 크게 확장되었다. 수학에 관한 많은 그리스와 아랍의 문헌들이 12세기에 중세 유럽에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그곳에서 더욱 발전했다.

고대와 중세 수학의 역사에서 한 가지 인상적인 특징은 수학의 폭발적 발전이 종종 침체된 세기 이후에 뒤따른 다는 것이다. 16세기 르네상스 초기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영향을 준 새로운 수학적 발전들은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고, 이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1. 고대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그리스의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일명 유클리드)가 그 이전의 저서와 연구를 집대성해 스토이케이아(Stoicheia)를 지었다. 이것은 후세에 마테오리치(Matteo Ricci, 중국명은 利瑪竇, 1552~1610)의 구역(口譯)과 서광계(徐光啓, 1562~1633)의 집필에 힘입어 기하원본(幾何原本)(1607)이라고 한역(漢譯)된 일이 있는데, 내용은 도형(圖形) 뿐만 아니라 그리스식 방법에 따라 체계화된 교과서였다. 즉 제 1권은 수직·평행 및 평행 4변형에서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정리까지, 2권은 2차방정식의 면적에 의한 해법, 3권은 원과 호, 호에 대한 각, 4권은 내외접 정다각형(內外接正多角形), 5권은 비례론(比例論), 6권은 비례론의 도형에의 응용, 7권부터 제 9권까지는 정수론(整數論), 10권은 무리수론(無理數論), 11권부터 제 13권까지는 입체기하학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의 정통적인 수학은 기하학과 정수론과 비례론이고, 대수(代數)는 기하학적으로 풀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리(公理정의(定義정리(定理)에 의해 매우 논리적으로 진행(進行)되었는데, 그와 같이 체계화한 데는 플라톤(Platon, BC 427~BC 347)에 의하는 바가 많다고 한다. 하기는 디오판토스(Diophantos, 246~330)는 기호를 사용해서 대수문제를 풀기는 했으나 그것은 예외적인 존재다.

 

 

2. 중세(500년경~1400)

 

중세 유럽 수학의 관심사는 근대의 수학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것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수학이 창조된 자연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신은 모든 것을 재고, 헤아리고, 달아서 처리한다."라는 성경 구절(외경 "지혜서" 1121)이 그 근거로 제시되었다.

 

중세 초기(500년경~1100)

보에티우스는 산술과 기하학, 천문학 그리고 음악에 대한 학문을 기술하기 위해 "4"이라는 용어를 만들면서, 수학을 교육 과정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발췌한 총서의 하나인 니코마쿠스의 산술 (De institutione musica)을 번역해 산수입문 (De institutione arithmetica)을 저술했다. 그의 책들은 실용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이론적이었으며, 그리스와 아랍 수학 책들의 재등장 전까지 수학 연구의 기초였다.

 

3. 유럽 수학의 재탄생(1100~1400)

 

12세기에, 유럽의 학자들은 과학의 아랍 문헌들을 찾으려고 스페인과 시칠리를 여행했는 데, 여기에는 체스터의 로버트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알 콰리즈미의 대수학(al-Jabr wa-al-Muqabilah)과 베스의 애덜라드와 카린티아의 헤르만 그리고 크레모나의 제라르드에 의해 여러 개의 판으로 번역된 유클리드 원론의 전체 문헌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새로운 원천들은 수학의 부흥을 불러일으켰다. 1202년에 쓰여지고, 1254년에 수정된 계산판의 책(Liber Abaci)에서, 레오나르도 피보나치는 유럽에서 에라토스테네스의 시대 이후 3천년 이상의 시간 차이를 두고, 처음으로 중요한 수학을 만들어 냈다. 그 작업은 유럽에 아라비아 수 체계를 도입하고, 많은 다른 수학 문제들을 논의한 것이었다. 14세기는 폭넓은 범위의 문제들을 탐구하기 위해 새로운 수학적 개념들이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학 발전에 기여한 하나의 중요한 분야는 위치 이동의 분석에 관한 것이었다.

토마스 브래드워딘은 산술적 비율로 증가하는 속도(V)는 기하학적 비율로 증가하는 힘(F)과 저항(R)의 비율이라고 제안했다. 브래드워딘은 이를 특정한 일련의 예로써 표현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직 로그 개념이 착상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오류로 밝혀진 그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써서 표현할 수 있다: V = log (F/R). 브래드워딘의 해석은 혼합된 의약품의 성분을 계량하기 위해 알 킨디와 빌라노바의 아놀드가 사용했던 수학적 기교를, 하나의 다른 물리 문제에 모방한 하나의 예다.

 

4. 근대 초기의 유럽 수학(1400~1600)

 

르네상스의 여명기에 유럽에서, 수학은 로마 숫자를 사용하는 불편한 기수법과 기호보다는 오히려 단어를 사용해 관계를 표현하는 것 때문에 아직은 제한적이었다. 즉 더하기 기호도, ‘같다라는 기호도, ‘x’라는 미지수도 사용되지 않았다.

 

16세기의 유럽 수학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한에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진전을 이루면서 시작되었다. 그 첫번째는 삼차방정식의 일반적인 해법으로, 통상적으로 1510년 경 스키피오 델 페로가 먼저라고 알려져 있지만, 카르다노의 제자 로도비코 페라리에 의한 사차방정식에 대한 일반적 해법을 포함된, 뉘른베르크에서 요하네스 페트레이우스에 의해 첫 출판된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책, 아르스 마그나(Ars magna).

이 순간부터, 수학은 당시의 물리학의 진보에 기여를 하거나 도움을 받으며, 급속하게 발전했다. 이 진보는 인쇄술의 발전으로부터 크게 도움 받았다. 가장 처음 인쇄된 수학 책들은 1472년 포이에르 바하의 "행성에 관한 새로운 이론"이며, 다음에는 1478년의 상업 산수에 관한 책 트레비소 산수였고, 그리고 1482년 에르하르트 라트돌트에 의해 최초의 수학 책인 유클리드의 원론이 인쇄되고 출판되었다.

항해가 증가하고, 더 넓은 지역의 정확한 지도에 대한 요구가 커짐에 따라서, 삼각법은 수학에서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바르톨로메오 피티스쿠스가 1595년에 삼각법(Trigonometria)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레기오몬타누스의 사인표와 코사인표가 1533년에 출판되었다.

세기 말에, 레기오몬타누스(1436-1476)와 프랑수아 비에트(1540-1603) 등의 사람들 덕분에, 수학은 오늘날 사용되는 기수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의 인도-아랍 숫자를 사용해 쓰여졌다.

 

5. 17세기

 

17세기에는 케플러, 네이피어, 데카르트 등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방법서설을 지은 철학자 데카르트는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불후의 이름을 남기고 있다. 이것은 기하학을 대수학과 결부시켜 대수학적 방법으로 기하학적 성질을 탐구하는 것으로, 후에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발견에 영향을 끼쳤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창시하고 근대해석학을 만들었다. 기하학, 대수학의 세계에서 해석학으로 비약한 수학은 물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뉴턴은 1671년 미적분학을 체계화했으며 1687년 프린키피아를 간행했였다. 뒤에 미적분학을 누가 먼저 창안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으나 현재는 두 사람이 독립적으로 그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참고로 라이프니츠는 기호화에 큰 공적을 남겼다.

 

6. 18세기

 

17세기에 창설된 해석학이 발전한 시대다. 스위스의 베르누이 일가와 프랑스의 수학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베르누이의 제자인 오일러는 뛰어난 계산력과 독창력으로 해석학의 면목을 일신했다. 그 외 오일러와 더불어 변분학을 창시한 라그랑주, 천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규명한 라플라스, 타원함수론의 선구자였던 르장드르, 화법기하학을 창시한 가스파르 몽주가 있다.

 

7. 19세기

 

19세기 내내 수학은 점점 추상화되었다. 이 시기의 탁월한 수학자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가 있다. 과학 분야에서의 수많은 기여를 제외하고도, 순수 수학에서 그는 복소 변수의 함수와 기하학, 그리고 급수의 수렴 등에서 혁명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대수학의 기본 정리와 2차호상법칙에 대해 처음으로 만족할 만한 증명을 얻었다.

이 세기에 유클리드 기하학의 평행선 공리가 더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라는 두 가지 형태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이 있었다. 러시아 수학자 니콜라이 로바체프스키와 그의 라이벌인 헝가리 수학자 야노슈 보요이는 각기 독립적으로 평행선의 유일성이 더이상 유지되지 않는다라는 쌍곡선 기하학을 발견했다. 이 기하학에서는 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 보다 작게 된다.

타윈 기하학은 19세기 말에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에 의해 발전되었다. 여기서 한 삼각형의 내각의 180°보다 크게 되고, 리만은 또한 세 가지 종류의 기하학을 통합하고, 폭넓게 일반화한 리만 기하학을 발전시켰으며, 곡선과 표면에 관한 관념들을 일반화한 다양체의 개념을 정의했다.

19세기는 추상대수학의 엄청난 시작을 경험했다. 영국의 윌리엄 로원 해밀턴은 비가환대수을 개발했다. 영국 수학자 조지 불은 곧이어 숫자를 단지 01로 표현한, 유명하게는 1+1=1, 현재 불 대수학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전개된 대수학을 고안했다. 불 대수학은 수리 논리학의 시작점이고, 컴퓨터 과학에서 중요한 응용을 가진다.

오귀스탱 루이 코시, 베른하르트 리만 그리고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더 엄밀한 방식으로 미적분학을 재구성했다.

또한 처음으로 수학의 한계가 폭발했다. 노르웨이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과 프랑스인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4차 이상의 다항 방정식을 푸는 더 이상의 일반적인 대수학적 해법은 없다라는 것을 증명했다. 다른 19세기의 수학자들은 이 증명을 이용해 자와 컴파스만으로, 임의의 각도를 3등분 할 수 없다는 것, 주어진 입방체의 2배의 체적을 가지는 입방체를 구성할 수 없다는 것, 주어진 원의 면적과 똑같은 정사각형을 구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 많은 수학자들이 이 문제들을 풀기 위해 헛되이 시도했었다.

아벨과 갈로아에 의한 다양한 다항 방정식의 해법에 대한 연구는, 군론 그리고 추상대수학에 관련된 분야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한 토대를 쌓았다. 20세기의 물리학자와 과학자들은 군론을 대칭성을 연구하는 이상적인 방법으로 간주했다.

19세기 말에 게오르크 칸토어는 거의 모든 수학에서 공통의 언어가 되었고, 무한의 개념을 엄밀하게 다루는 것이 가능하게 된 집합론을 발명했다. 칸토어의 집합론, 그리고 주세페 페아노, 로이첸 에흐베르투스 얀 브라우베르, 다비드 힐베르트, 버트런드 러셀에 의한 수리 논리학의 출현은 수학의 기초에 관한 오랜 논쟁을 일으켰다.

 

TED 감상

세드릭은 이런 말을 한다. ‘그저 숫자와 계산, 법칙에 불가한 수학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수학이 추상적일지 몰라도 사유를 통해 우리의 핵심 활동을 입증하고 최고의 재능인 상상력을 자극시키기 때문이다. 몇 달의 사투 끝에 드디어 문제를 해결한 정확한 추론을 이끌어 냈을 때의 그 기분만큼 강렬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앙드레 베유는 심지어 성적 쾌락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말은 수학에 흥미와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수학자, 수학연구원인 꿈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나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의 가장 큰 매력을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의 짜릿함. 보이지 않던 문제의 해결방법이 보이고 정답이 나왔을 때의 기쁨이라고처음 보는 유형의 어려운 문제와 마주했을 때는 문제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대결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 문제를 정복하고 싶고 답지 없이 스스로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 세드릭의 말처럼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인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져있는 시간은 한정적이고 수학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탐구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 내가 수학연구원을 꿈꾸는 이유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 몇 시간, 몇 달을 투자하여 한 곳에만 몰두하여 연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 다른 매력으로는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것이다. 수학 없이는 물리, 화학, 경제 등 기초학문을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이 세계가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세드릭의 강의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가우스의 곡선‘ ’갈톤 보드의 구슬들과 같이 우연 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모두 수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의 크기, 공전궤도 등도 모두 수학의 법칙을 이용해 알아낸 것들이다. 그래서 세드릭은 수학은 우리로 하여금 직관을 뛰어넘어 우리 손길이 미치지 않는 영역을 탐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멋진 말을 남겼다. 현재 세상은 수학의 직관을 이용해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총망받는 직업 1위로 수학자가 뽑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기피하는 직업중 하나이다. 고등학교에서 너무 어려운 수학을 배워 흥미를 잃고 정답만 중요시하기 때문에 답이나 풀이를 외우고 깊게 문제의 본질을 탐구하려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성인이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수학이란 이름만 들어도 짜증나고 어려운 학문이라 생각되어 기피하는 것 같다. 만약 우리에게 문제의 본질을 설명해주고 답이 아닌 풀이과정을 중요시 여기고 경쟁이 아닌 친구들과 자신의 생각을 나누었다면 수학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흥미로운 수학의 매력 3가지

수학은 딱 떨어진다. 정답이 명확하다. 상당히 구체적이다. 수학에 대한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수학이 상상력이 바탕이 된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책이 있다. 상상력 덕분에 4차원 공간이나 무한의 개념, 허수 등을 현실로 인식시켜 준다고 말한다. 실제로 숫자 역시 상상력의 산물이다. 숫자 ‘5’ 그 자체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가? 절대 없다. 하나의 개념일 뿐이다. 따라서 수학은 상상력의 학문이다. 냉정해 보이던 수학자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다니? 조금 더 수학에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을 만나보자.

1. 과학기술은 수학에게 빚을 지고 있다.

 

물론 수학이 수많은 과학기술의 기초가 되는 중요한 학문이라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의 우주탐사선 보이저(Voyager) 호의 기술이나 위성항법장치인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기술, 혹은 매일 접하는 스마트폰 기술 등등 모두 수학의 기초 위에 탄생했다. 대부분의 과학기술의 성과는 수학으로 기초 공사를 다진 후 그 위에 쌓아 올린다. 이렇듯 수학은 기초과학이라는 성격 탓에 그 역할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드물다.” (공상에 빠진 수학자가 들려주는 상상력의 공식’, 세야마 시로 저)

우리는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살고 있다. 과학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달하고 있다. 그 안에 수학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과학자들이나 기술 종사자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수학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조차 못한다. 수학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2. 중학 기하학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발견된 지식이다.

과학지식은 오히려 이러한 검증 과정을 거치며, 언제든 최신 지식과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분야다. 그러나 수학의 진리는 다른 과학지식과는 다르다. 현재 중학생이 배우는 평면 기하학의 정리는 모두 2~3000여 년 전의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발견된 지식이다. 중학생이 배우는 삼각형의 합동조건, ‘두 밑각의 크기가 같다는 이등변삼각형에 대한 정의,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에 이미 정의되어 있다. 이렇듯 수학은 일단 증명된 이론이 번복되는 일은 없다. 수학의 정리는 영원의 진리로, 시대를 넘어 계승된다.” (공상에 빠진 수학자가 들려주는 상상력의 공식’, 세야마 시로 저)

수학과 과학은 차이가 있다. 과학은 사실로 확인된 실증이다. 끊임없이 검증 과정을 거친다. 수학은 논리로 확인된 논증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정리된 수학적 논증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우리가 중학 과정에서 배우는 평면 기하학이 고대 이집트인이나 그리스인이 정리한 것과 같은 이유다. 수학과 같이 논리에 의한 증명은 타인에게 어떤 것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3. 수학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다.

수학은 점점 추상적인 계산 그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개념이 연구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일이라도 수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수학은 철학 혹은 예술과 닮았다. 이런 특징 또한 많은 사람이 수학을 배우면서 수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히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 수학은 사람의 상상 속에서는 존재하지만 실체가 없는 그 무엇까지도 연구 대상으로 삼아 왔다. 생각한다는 것, 그 자체를 객관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수학만의 독자적인 발전 형태다. 이런 의미에서 보아도 수학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상에 빠진 수학자가 들려주는 상상력의 공식’, 세야마 시로 저)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 그리고 상상이 가능한 존재다. 수학자인 저자는 인간을 호모 이매지넌스(Homo Imaginens), ‘상상하는 인간으로 부른다. 상상이라는 행위는 수학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으로 인해 수학은 발전하고 관심도 높아진다. 답이 딱 떨어지고 구체적인, 다소 재미 없는 학문인 줄 알았던 수학은 의외로 상상력의 학문이다. 그 상상력을 자극해 줄 수 있는 교육법과 학습법이 필요한 이유다

카테고리 없음

맨큐의 경제학 27장을 보면 재무이론의 기초가 담겨있다.

재무이론 (finance)이란 시간에 걸친 자원 배분과 위험 관리에 관한 사람들의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분야를 말한다.

 

현재가치 (present value) : 돈의 시간가치를 계산하는 법

현재가치(現在價値, Present Value)는 현재가치와 장래가치로 구분되며, 미래에 얻게 될 확실한 부()의 가치를 현재의 가치로 환산한 값을 말한다. 줄여서 현가(現價)라고도 한다.

 

미래에 얻게 될 부는 명목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른 기회비용인 시간가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표면상으로 동일한 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미래부와 현재부의 가치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현재 가지고 있는 1,000원과 미래의 1,000원은 그 가치가 동일하지 않은데, 현재의 1,000원으로 다른 자산에 투자하여 초과이익을 얻을 수 있거나 혹은 목이 마른 사람의 경우 한 시간 뒤에 얻을 1,000원보다 지금의 1,000원으로 음료수를 사먹는 것이 효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일한 금액일 경우 미래에 얻을 수 있는 부의 가치가 현재에 얻을 수 있는 부의 가치보다 작다. 그 이유는 현재의 부를 무위험자산에 투자한다면 최소한 무위험이자율만큼의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결국 미래에는 더 큰 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치 (future value)는 현재 이자율에서 오늘 주어진 금액으로 미래에 얻을 수 있는 금액이다.

 

복리계산 (compounding) : 은행 예금의 이자가 그 계좌에 예치되어 거기에 다시 이자가 붙는 방식으로 원리금이 축적되는 것

위험 회피적 (risk averse) :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성향

 

분산투자 (diversification) : 한 가지 위험을 여러 개의 서로 관련 없는 소규모 위험으로 대체할 경우 위험이 감소되는 현상

 

특정 기업 위험 (firm-specific risk) : 특정 기업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위험. 분산투자는 특정 기업에 관련된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

시장 위험 (market risk) : 모든 기업들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

분산투자는 모든 상장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전체에 관한 불확실성은 제거할 수 없다.

 

위험 회피적인 사람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1. 위험 기피: 위험이 동반되는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다.

2. 보험: 손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반대급부를 설정한다.

3. 분산투자: 한 가지 큰 위험을 여러 가지의 작은 위험을 나누어서 위험을 축소한다.

 

기초가치 분석 (fundamental analysis) : 기업 가치를 산정하기 위해 기업의 재무제표와 장래 전망을 분석하는 것

 

효율적 시장 가설 (efficient markets hypothesis) : 자산 가격이 그 자산의 가치에 관든 모든 공개된 정보를 반영한다는 이론

 

정보 효율성 (informational efficiency)사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합리적으로 반영한 자산 가격을 나타냄

 

https://ko.wikipedia.org/wiki/

 

돈이 늙어야 사람이 산다실비오 게젤

권홍우 논설위원

2017-03-17 08:15:09

 

재무이론.hwp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이 사람이 등장한다. 우파와 좌파를 가리지 않고 대안으로 생각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실비오 게젤(Silvio Gegell). 독일 혈통이고 평생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지만 그는 국적도, 사상도 불명확한 사람이다. 게젤의 생각은 간단하다. ‘세상 모든 게 늙는 데 돈은 왜 안 썩나. 돈에도 생명이 있어야 경제가 살고 인간들의 세상이 산다.’

게젤이 돈의 힘과 생명에 주목한 계기는 1890년 발생한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 나이 28살 때였다. 1862317일 독일계 부모의 9남매 중 일곱째로 벨기에에서 태어난 그는 이렇다 할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대학에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대학 진학을 마다한 그는 우체국과 상점을 거쳐 25세 때 아르헨티나로 이주, 수입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돈의 속성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890년 발생한 베어링 위기.*

자신은 물론 주변의 상공인들이 도산하는 원인을 찾던 그는 독학으로 경제학 공부에 매달렸다. 찾은 대안이 늙는 돈(aging money)’. 화폐 발행 이듬해부터 일정 비율씩 가치를 깎는 자유 화폐를 발행하자는 주장을 1906년에 내놓았다. ‘(-)이자로 돈의 축재 기능을 없애고 교환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다. 오늘날의 마이너스 금리와 비슷한 발상이다. 게젤이 제시한 늙는 돈의 원리는 간단하다. 돈이 발행된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액면가 이하의 가치를 갖게 하는 것. 시간이 많이 흐르면 돈의 가치는 완전히 없어진다. 돈의 죽음! 사업가로, 재야경제학자로 이름을 날리던 게젤은 1919년 비상과 추락을 동시에 맛봤다. 세계 1차 대전에 패한 독일에서 단명했던 바바리안 소비에트공화국의 재무장관에 임명됐으나 불과 6일 뒤 유혈 쿠데타로 쫓겨났다. 193068세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뜻을 펼치지 못했지만 자유 화폐는 결코 죽지 않았다. 대공황기에 자유 화폐를 도입한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지에서는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돈을 사용하려는 수요로 화폐 유통속도가 빨라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경제위기를 맞은 오늘날 게젤의 늙는 돈은 일자리 창출과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한 최고의 처방전이자 탐욕을 배제한 시장경제라는 평가 속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 지역화폐와 대안화폐의 뿌리인 게젤의 이름은 갈수록 빛난다.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맨큐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화폐의 종말을 지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등 쟁쟁한 경제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들먹인다. 게젤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준 사람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서문에서 케인스는 이렇게 썼다. ‘마르크스보다 게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시대가 올 것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역사적으로 베어링 위기는 두 번 일어났다. 두 번째 위기가 발생한 시점은 19952. 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233년 전통을 가진 베어링브러더스은행을 비롯, 증권사와 투자신탁 등 계열사가 모두 망했기 때문이다. 망조는 어이없게도 싱가포르 지점의 한 직원으로부터 비롯됐다. 실수로 선물 계약에서 큰 돈을 번 행원 한 사람의 욕심과 회계 조작이 거대 금융그룹을 망가뜨렸다. 첫 번째 위기는 189011월 터졌다. 아르헨티나의 밀 농사 흉작과 정변으로 외채 상환이 불투명해지면서 영국 최대은행이던 베어링 브라더스도 위기에 빠졌다. 잉글랜드 은행과 영국 내 2위 은행이던 로스차일드의 지원으로 베어링 브라더스는 위기를 극복했으나 아르헨티나 경제는 곤두박질쳤다. 경제사가 찰스 킨들버거가 명저 광기, 패닉, 붕괴-금융 위기의 역사에서 국제 공조의 우수 사례로 꼽은 베어링 위기를 직접 경험한 게젤은 새로운 세상을 그렸다. 그 결과가 바로 늙은 돈. 게젤은 돈이 썩어야 인간 세상이 산다고 믿었다. <저작권자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 ··· 6 7 8 9 10 11 12 ··· 14
블로그 이미지

채희주